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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리뷰

고양이가 액체인 이유 / 고양이 액체설 / 고양이 액체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자! / 이그노벨상 이야기

고양이가 액체인 이유 / 고양이 액체설  / 고양이 액체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자! / 이그노벨상 이야기


이번 과학 컨텐츠 주제는 '고양이 액체설' 입니다.


고양이 액체설




머리만 들어갈 수 있으면 상자, 와인잔, 세면대, 가구 틈새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고양이

이런 장면들 때문에 전세계 집사님들은 '고양이 액체설'을 주장해왔습니다.

많은 집사님들께서 아마 한번쯤은 주인님의 이런 장면을 보셨을거에요

고양이는 분명히 연체동물이 아니라 척추동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액체처럼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고양이 액체설



액체같은 특성을 보이는 고양이의 이런 능력은 고양이들이 가진 엄청난 유연성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 유연성은 고양이 특유의 신체구조 덕분에 가능합니다.



1. 고양이 특유의 신체구조


우선, 고양이는 사람에 비해 척추뼈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의 척추뼈는 태어날 때 목뼈 7개, 등뼈 12개, 허리뼈 5개, 엉치뼈 5개, 꼬리뼈 4개 총 33개이고 성장과정에서 엉치뼈가 하나로 합쳐지고 꼬리뼈도 하나로 합쳐져서 성인이 되면 총 척추뼈의 개수는 26개가 됩니다.

그래서 신생아나 어린이들이 성인보다 더 유연합니다. 

척추뼈가 많다는건 관절이 많다는 것이고 관절이 많으면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이에 반해, 고양이의 척추뼈는 꼬리까지 포함하면 총 53개나 됩니다. 

 

고양이 뼈



또 사람의 쇄골(Clavicle)의 한쪽은 어깨뼈(견갑골, Scapula)와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가슴의 흉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고정되어 있어서 큰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이에 반해서, 고양이의 쇄골은 크기도 작고, 뼈에 직접 연결되지 않고 퇴화된 상태로 떠있고

뼈 대신 인대와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움직임에 큰 제한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쇄골에 이어지는 가슴이 좁은데 이 가슴을 더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갈비뼈 각각에 관절마디가 있어서 사람과 다르게 갈비뼈를 접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액체와 같은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이런 해부학적인 이유 이외에 물리학을 이용해 고양이가 액체인 이유를 밝힌 연구자가 있습니다.

프랑스 리옹대학교 물리학연구소의 파르딘 마크 앙투안은 현대 유변학을 바탕으로 고양이가 액체인 이유를 증명했습니다.


그는 이 연구를 '고양이의 유변학' 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참고로 유변학은 물질의 흐름과 변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고양이의 유변학Fardin, "On the rheology of cats", Rheology Bulletin, 2014



2. 고양이 액체설의 과학적인 근거



우리는 고체는 부피와 모양이 고정된 상태이고 액체는 부피는 일정하지만 모양이 용기에 따라 달라지는 상태이고 기체는 부피와 상관없이 팽창하는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파르딘 박사는 좀 더 엄밀하게 고체, 액체, 기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데보라 수 (Deborah number, De)를 도입합니다.


데보라 수 (Deborah number)



데보라 수는 물질이 흐르는 시간(변형이 일어나는 시간, relaxation time)을 관찰 시간(observation time)으로 나눈 값인데 데보라 수가 1보다 매우 크면 고체, 1보다 매우 작으면 액체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물질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물질이 흐르는 시간은 무한대에 가까운 값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찰 시간 내에 마우스나 키보드의 변화의 흐름을 관찰할 수 없죠. 이런 경우에 데보라 수가 1보다 매우 커지게 되고 마우스나 모니터는 고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물과 같은 물질은 우리가 짧은 시간동안 관찰해도 그 시간내에 물질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물이 흐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관찰시간에 비해서 물질이 흐르는 시간이 매우 작아지고 데보라 수는 1보다 매우 작아지게 됩니다. 이런 물질을 액체라고 부릅니다.


고양이의 유변학Fardin, "On the rheology of cats", Rheology Bulletin, 2014



파르딘 박사에 의하면 그림 (a)와 같이 뛰는 고양이는 관측시간이 1초 미만일 때, 고양이의 형태가 변화하는 시간이 1초보다 길어서 고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 (b)와 같이 인잔에 들어가는 고양이는 수 분이상 관측했을 때 빈 와인잔을 가득 채우게 되므로 관측시간이 수 분 이상인 경우에 이런 고양이는 액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 (c), (d)와 같이 아기 고양이에 비해 나이가 든 고양이들은 어떤 용기에 몸을 더 빨리 모양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서 물질이 흐르는 시간이 적어져서 아기 고양이에 비해 더 액체의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고양이의 유변학Fardin, "On the rheology of cats", Rheology Bulletin, 2014



파르딘 박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모세관 현상을 보이는 고양이(그림 a)

초소수성 표면위의 물과 같은 현상을 보이는 고양이(그림 b)

표면장력으로 인해 병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고양이(그림 c)

거친 바닥에 퍼져있는 고양이(그림 d)

소수성을 보이는 고양이(그림 e)

매끈한 표면에서 흐르는 고양이(그림 f)

수직면에 부착된 고양이(그림 g) 등 다양한 액체 형태의 고양이를 분석했습니다.

 

파르딘 박사는 이 논문으로 2017년에 이그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그 노벨상은 예전에 올린 '커피가 넘치는 이유' 컨텐츠에서도 한번 소개를 드렸는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으로, 재미있고 기발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재미있는 과학 연구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과학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컨텐츠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 논문의 저자는 논문에 언어유희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래도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만약 국내 대학원에서 석사 혹은 박사과정생이 이런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랩미팅때 제안을 했다면 지도교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연구를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논문 작성 단계에서 저런 언어유희를 담은 문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 그 학생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제는 제가 예전처럼 연구를 할 일은 아마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런 개방적인 연구문화는 과거에도 정말 부러웠고 현재도 부럽습니다.








참고자료


1. Fardin, "On the rheology of cats", Rheology Bulletin, 2014

2. Agur and Daily, "Grant's Atlas of Anatomy 13e", LWW, 2013

2. 변보경 기자, "어느 그릇에도 들어간다는 고양이 액체설은 사실이었다", 인사이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