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교 1학년이던 스무살 시절부터 서른 한살이 된 지금까지 꽤 많은 과외를 해왔습니다.
과외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중앙 봉사동아리에서 부회장으로 활동을 하며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했고, 학원에서 공부에 관한 특강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했었는데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하는 법을 모르고 공부를 안해서 성적이 이모양이에요…
제가 초보 과외선생님이었을 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학부모님의 말씀에 공감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에서 다양한 수준의 친구들을 보고,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제가 가르친 학생의 수가 늘어날수록 저의 생각은 확고해졌습니다.
공부는 누구나 잘할 수도 있지만 사람마다 그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다.
서울대학교에 다닐 때 분명 같은 시간을 공부했는데,
아니 내가 더 공부한 것 같은데 시험 성적이 나오면 결과는 정반대일 때,
아무리 수업을 집중해서 들어도 이해가 안가는 내용이 있고 같은 수업을 들은 친구는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 때,
과외를 할 때 똑같이 열심히 가르쳤고 이 학생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 정작 성적은 다른 학생이 더 높을 때
이렇게 믿었던 노력에게 배신당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면 그동안 제가 믿어왔던 세상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많아지고 익숙해질수록 공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공부를 열심히 안해도 공부를 잘 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학생의 비율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보통의 부모님들께서는 본인이 낳은 자녀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자녀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좋은 쪽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런 현상은 자녀가 어릴수록 두드러집니다.
자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 단어 몇 개만 구사해도 자녀가 영재인 것 같고 덧셈 뺄셈을 틀리지 않고 잘 하면
자라서 훌륭한 수학자가 될 것 같았던 경험 없으신가요?
세상에 똑똑한 사람의 비율은 낮고 혹여나 어떤 학생이 똑똑한 머리를 타고났다고 해도 결국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근성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머리와 꾸준한 노력이 합쳐져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고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꾸준히 노력하는 것 또한 어쩌면 재능의 영역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말로는 매우 쉬울지 모르겠으나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학부모님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을 때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향해 다른 것을 모두 희생하고 올인해서 꾸준히 노력해본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으신가요?
저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자녀가 공부를 안하거나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자녀만의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를 몇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Macnamara et al. 의 연구
Macnamara et al. 은 2014년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노력과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진한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요인들을 나타내는 것이고 연한 회색으로 나타낸 부분이 노력으로 설명되는 요인들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게임, 음악, 스포츠, 교육, 전문직에 대해서 노력의 비중은 각각 26%, 21%, 18%, 4%, 1% 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히 교육에 대해서는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96%나 차지합니다.
물론 이 96%가 모두 유전적인 영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연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부를 못하는 원인 중 노력의 부재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최성수 교수의 연구
최성수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8년 11월 '한국에서 교육 기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져 왔는가' 라는 연구에서 1940년대 ~ 1980년대 후반 출생자 약 20만명의 교육 수준을 분석했습니다.
그 연구를 살펴보면,
4년제 대학 중 상위권 대학으로 범위를 한정했을 때 부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고졸자 부모의 자녀와 대졸자 부모의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할 가능성의 차이를 비교했을 때
60년대생에 비해 80년대 중후반생은 1.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시간이 갈수록 부모의 학력이 자녀로 대물림되는 경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3줄 요약입니다.
1. 머리가 좋은 사람의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
2.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부 역시 노력만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꾸준히 노력하는 능력도 타고나는 것일지 모른다.
* 참고자료
1. Macnamara et al.,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Profession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science, 2014
2. 최성수, 이수빈, "한국에서 교육 기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져 왔는가?: 부모 학력에 따른 자녀 최종학력 격차의 출생 코흐트 추세, 2018
'과학적인 공부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한계를 인정하자, 모든 시험을 잘 볼 수는 없다 (0) | 2020.10.05 |
---|---|
무조건 오래 공부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 순공부시간 / 집중의 중요성 (0) | 2020.09.28 |
플래너에 계획을 이쁘게 정리해놓는게 공부의 시작 아닌가요? / 공부 계획 / 공부의 본질 (0) | 2020.09.28 |
몇시간 이상 잠자면 좋은 대학교 못가는 것 아닌가요? / 수면시간의 과학 / 수면 유전자 (0) | 2020.09.27 |